2024년 8월 4일 주일 설교 Sean Chang, 8월 4, 20248월 19, 2024 오늘 본문 말씀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온 것부터 시작을 합니다. 지난 주에 무리들이 예수님을 강제로 왕을 삼으려 할 때 예수님이 그들을 피해 혼자서 산으로 가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지 않자 혹시나 혼자서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가셨나하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다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같이 가버나움에 도착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오병이어의 기적의 장소에 있던 무리가 이제 예수님도 안보이고 제자도 안보이니까 그들도 혹시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가셨나 하고 예수님을 찾으러 배를 타고 가버나움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겁니다. 분명히 자기들은 제자들이 예수님 없이 배를 탄 것을 보았는데 가버나움에 와보니 예수님이 있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 배로 가신 것을 그들은 못봤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선생님 언제 여기 오셨습니까? 이 말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많은 기대감으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환영을 달가와 하지 않으십니다. 바다 저편에서도 강제로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는 군중을 피해서 산으로 가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의 환영을 무시하고 곧바로 그들의 믿음을 바로잡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천국에 대한 표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먹은 떡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는 표현은 좀 더 분명히 하자면 영원히 있을 음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씀하십니다.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결국 그 생명의 양식을 예수님, 메시아, 곧 하나님이 기름을 부으신 예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원히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것이 어떤 일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믿는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원토록 있을 양식을 얻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가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 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신을 직접 보고 있는 군중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믿든지 아니면 안 믿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다른 종교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어릴 때 죽은 아이들은 천국에 갑니까 못 갑니까? 성경은 이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 하등의 잘못이 없는 이런 사람들을 가혹하게 지옥으로 보내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는 또다른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은 하나님을 월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답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전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 즉 메시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또 묻습니다.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징이 무엇입니까? 우리 선조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기 위해서 모세가 보여주었던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만나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지 모세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모세가 만나를 준 것처럼 예수님도 같은 표적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늘에서 떡을 준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그리고 그 떡은 먹고 몇시간 지나면 다시 배고픈 육신의 떡이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다. 아마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당시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뭐 그런 떡이 있습니까? 그럼 그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세요. 그래서 저희로 하여금 영원히 배고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있습니다. 음식이란 입으로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생명의 떡은 어떻게 먹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그럼 생명의 떡은 어떻게 먹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떡은 영적인 양식이므로 그것이 우리의 육체적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결코 배고픔이 없을 것이고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믿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말하는 믿음과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보고서 당신의 말을 믿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기적을 보고서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 즉 보지 않아도 그 사람을 신뢰하는 그런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떡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씀인데요.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빈곤한 삶을 살았습니다. 거기다가 로마 제국은 또 얼마나 심하게 세금을 거두는지. 그래서 그들은 빈곤에 지쳐 있었고 먹을 것에 항상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떡 이야기는 그 사람들에게는 귀가 혹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언제나 잘 살게 되어 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혹시 우리 중에 예수님을 믿으면 잘 먹고 잘 살 것이라고 믿는 분은 없겠지요? 그래서 교회 나오시는 분은 없겠지요? 아직도 그런 분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실로암 교인들은 그런 사람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주에 어느 식당 주인 부부와 영업 시간 이후 문 걸어 잠그고 늦게까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 교회를 정규적으로 나가는 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에 대해 상당히 좋지 않은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솔직하게 그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는 것이 감사하더라구요. 교회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는 선입관과는 달리 교회에 대해서도 성경에 대해서도 꽤나 잘 알고 있더라구요. 그 중에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많은 목사들이 예수 믿으면 잘살게 된다고 설교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보기에는 그렇게 말하는 목사들은 전부 미신적인 기복 신앙을 말하는 가짜 목사들이라고. 언제 예수님이 자기를 믿으면 부자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느냐고. 성경에 어디에 그렇게 쓰여있냐고. 언제 예수님이 자기를 믿으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산다고 했느냐고. 이렇게 교회 안 다니는 사람도 그건 가짜라고 알고 있는데 소위 목사라는 사람이 아직도 그런 번영 신학을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그리고 거기에 혹해서 잘 살아보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남미호량계교와 다른 것이 뭐가 있습니까? 서낭당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미신과 다른 것이 뭡니까? 신앙이 깊어지면 우리가 왜 교회에 다니는지 그 이유도 깊어집니다. 그것은 교회 다니면 하나님이 부자되게 해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롯또 당첨하게 해주셔서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친구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가 가자고 해서 왔다가 복음을 듣습니다. 성령님이 그 마음속에 믿음을 주셔서 이제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점점 알아갑니다.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되면 현재 내가 처한 상태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내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는 일에 봉사하게 됩니다. 인생에 목적이 생기니까 사는 것이 즐거워집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웃을 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고 친구가 또 따라서 교회에 나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씩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 식당 주인 부부는 2주일 전에 아침 8시에 와서 개업 예배를 드려달라고 저에게 부탁을 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주인 부부와 저의 부부 4명이서 간단히 개업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인 남자는 밤새도록 일을 하느라 개업 예배하는 중에 눈을 지긋이 감고 있어서 저는 너무 피곤해서 졸고있나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식사를 하면서 그러더라구요. 그 이른 아침에 오셔서 개업 예배를 드리고 축복 기도를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졸고 있는 줄 알았는데 들을 것은 다 들었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아내가 하는 말이 지금은 가게가 단장을 새로 하고 grand opening을 해서 이것 저것 할 일이 많아 바쁘지만 동생이 와서 도와주기로 되어있다구요. 그래서 동생이 오면 실로암 교회에 등록하고 참석하겠다고 했습니다. 나와봐야 아는 거지만 저는 우리 교회에 나오라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을 해주니 참 감사했습니다. 저는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처음 시작부터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성령님이 때가 되면 믿는 자의 숫자를 더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