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1일 주일 설교 Sean Chang, 7월 21, 20248월 19, 2024 지난 주에는 침례 요한이 한을 품은 헤로디아와 그의 딸 살로메 때문에 목이 잘린 사건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정말 굵게 살았고 그래서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예수님에게 들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역시 순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직 소수의 허락된 사람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침례 요한의 사건을 설명하기 전에 예수님이 12 사도를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돈주머니 차지 말고 옷도 한 벌만 가져갈 것이며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는 집에서 끝까지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병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쫓는 능력을 가지고 나가서 예수님 대신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소문이 헤롯의 귀까지 들어가 헤롯이 이는 분명 자기가 목 베인 침례 요한이 살아 돌아왔다고 밤잠을 못 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노방전도 나갔던 열 두 제자가 돌아와 신이 나서 예수님께 보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사역의 소문이 왕궁 깊숙이 앉아있는 헤롯 왕에게도 들렸으니 그 소문은 저자 거리에 있는 평민들의 빠른 입을 통해 전 갈리리 지역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으니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끼리만 좀 조용한 데로 가서 쉬면서 좀 먹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좀 떨어진 고적한 장소로 가는데 사람들이 미리 알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고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합니다. 그리고 인산인해로 진을 치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성경공과에서는 건너뛰었지만 광야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 잘 아는 이야기라 특별히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이 기적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육체의 양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영적 양식 공급함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4복음서에서 이 이야기는 너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어서 영적 양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인데 이것은 이성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의 의견은 어떻게 떡 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을 먹일 수 있느냐 이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는 이런 논리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자기는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니까 그 나머지 성경의 기적들이 다 믿어지더랍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무엇입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것이 믿어지니까 노아의 홍수?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는 것? 하나님께는 식은 죽 먹기라는 것입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해를 하늘에 붙들어 매 놓는 것?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광야에서 5천명을 먹이고 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배로 오시는 것?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만약에 성경에서 기적을 빼면 별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혹시 주위에 그런 이성적인 눈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놀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오늘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때로는 아무도 없는 광야에 가셔서 기도하시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여러분의 광야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평안히 쉴 곳이 있습니까? 너무 사람들에 치여 일에 치여 바삐 살다 보면 진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조용한 가운데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재정비하는 그런 장소가 시간이 있습니까? 클리프톤 박사가 개발한 강점 테스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강점을 34가지로 나누고 177개의 질문을 통해서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강점 5가지를 알려주는 테스트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Learner, Strategic, Self Assurance, Achiever, 그리고 Intellection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 Intellection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광야가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고민거리가 있을 때, 기도가 필요할 때, 저는 홀로 차를 타고 글로스터 시골로 나갑니다. 늦은 밤에는 다니는 차도 많이 없어 운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고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아 캄캄합니다. 한마디로 한적한 곳입니다. 그래서 운전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기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지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합니다. 저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면 아내는 벌써 꿈나라를 헤메고 있습니다. 아 또 한가지! 요즈음은 별로 그런 일이 없지만 이전에 부부 싸움을 심하게 했을 경우에는 저는 차를 타고 나갑니다. Love song들을 들으면서 한 두시간 특별히 가는 곳 없이 헤매다 보면 어느새 제 마음이 풀어집니다. 미국식으로는 men cave라고 하는데 남자들의 굴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여자도 굴이 있답니다. 여우 굴! 이건 제 말이 아니고 여자분한테서 나온 이야기니까 저를 sexist, 즉 성차별 주의자로 몰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적한 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가기는 갔는데 사람들이 벌써 진을 치고 있어 광야가 광야가 아닌 저자 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화가 났을 법도 한데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를 잃은 양 같아서 연민을 느끼시며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다가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발빠른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전 지역에 퍼지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 주위에 모여드는 것입니다. 2주 전에 12년째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낳을 것이라는 미신적인 생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런 미신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우리 성경에는 옷 가라고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NIV에도 the edge of his cloak, 즉 외투의 가장자리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희랍어 본문은 이 단어가 tassel 즉 옷 끝에 다는 술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술이라는 것은 옷이나 졸업식 사각모에 다는 이런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술을 겉옷에 달고 다녔습니다. 당시의 유행인가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민수기 15장에 보면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15:38-39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술을 달라는 명령은 그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범 유대인이었으니까 아마 이런 겉옷을 입고 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그림을 누군가 성경에 기초해서 이렇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갖고 있는 Prayer Shawl입니다.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온라인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렇게 술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할 때 이 prayer shawl을 씁니다. 그리고 여기에 달린 술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 본 감리교회도 저 현관 구석에 보시면 prayer shawl rack이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은 빌려갑니다. 저도 가끔 기도할 때 써봤는데 무슨 신비한 기운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더군요. 그런데 이 술에 손을 대면 병이 낫는다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요? 정말로 12년간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치유를 받았고 또 오늘 본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병 고침 받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늘은 이 질문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교훈이 있습니까? 저는 모든 성경 말씀에 교훈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교훈이라기 보다 예수님의 인성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 목자 없는 양을 불쌍히 여겨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고도 아직도 이것이 잘 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적어도 한 부분에 있어서는 참 목사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를 40년 이상 다녔지만 이렇게 성경 공부를 빡 세게 해 본적이 없습니다. 성경 통독을 몇 번 했지만 통독을 했다는 스코어 카드를 신경 쓰느라 정작 말씀이 저에게 주시는 의미를 묵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매 주일 설교 준비를 하려니 당연히 성경 말씀을 정독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에는 그냥 지나쳤던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이제야 목사는 minister of the Word 즉 말씀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데 그렇게 준비한 설교가 여러분의 믿음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아내는 대부분 졸고 앉아 있지만 그래도 한 두 분은 눈을 반짝 반짝 하시며 제 설교를 들어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설교